※ 본 전문은 현장 강의 녹취를 바탕으로, 강사의 말투와 흐름을 살려 읽기 쉽게 정리한 것입니다.
본문 교독 — 여호수아 14:12-15
12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하니
13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14헤브론이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며
15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라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에서 가장 큰 사람이었더라 그리고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1. 이름이 ‘개’인 사람, 갈렙
오늘은 갈렙입니다. 다들 오래 예수를 믿으신 분들이라 성경을 잘 아시지요. 그런데 갈렙이라는 이름의 뜻이 참 묘합니다. ‘개’라는 뜻이거든요. 어떻게 사람에게 ‘개’라는 이름을 붙였을까요? 저는 그게 너무 궁금했습니다.
더 문제는, 이 이름 때문에 얼마나 놀림을 당했겠느냐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이름 가지고 놀리잖아요. 저도 최무열이니까, 거꾸로 해서 ‘열무김치’, ‘무열왕릉’, ‘무열장군’, 얼굴이 불그스레하다고 ‘도마도’까지 들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박성립이라는 친구가 운동장에서 “야, 열개!” 하고 놀리는 바람에 제가 돌멩이를 집어 던진 일도 있었습니다.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지요. 다 이름 때문입니다.
사실 제 이름은 좋은 이름입니다. 최(最), 무(武), 열(烈). 요즘은 누가 ‘무열장군’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는데, 제 눈썹을 보면 딱 무사의 눈썹입니다. (웃음)
그렇다면 ‘개’라는 이름을 가진 갈렙은 얼마나 놀림을 당했겠습니까. 그냥 “개”라고만 했겠어요? 뒤에 온갖 말이 붙었겠지요. 우리는 ‘갈렙’ 하면 멋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시대에 그 이름으로 산다는 것은 참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나중에 진짜 ‘개’가 되었습니다. 개처럼 충성된 사람, 이스라엘을 위한 충성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욕할 때 ‘개’ 자를 붙이지만, 개는 참 억울합니다. 개만큼 충성스러운 존재가 없거든요. 어떤 목사님은 개를 가만히 보다가 “주님, 제가 개보다 못합니다. 저를 개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개는 손님처럼 봉사하다가 마지막에는 자기 몸까지 내어 줍니다. 갈렙은 ‘개’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끝까지 이스라엘을 지켜 낸 진짜 충성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연구 대상입니다.

2. 아버지 여분네 — ‘돌아선 자’
이 이름을 지어 준 데에는 중요한 동기가 있습니다. 바로 아버지 여분네입니다. 여분네를 알면 왜 아들에게 ‘갈렙’이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은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라고 말합니다. ‘여분네’라는 이름은 “돌아섰다”는 뜻입니다. 학자들은 이것이 본래 이름이 아니라, 어떤 계기로 바꾼 이름이라고 봅니다. 왜 그랬을까요? 갈렙의 집안은 본래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이방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의 삶과 그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살아 계신 하나님이 계시는구나, 참 신이시구나” 하고 그 자리에서 돌아선 사람, 그가 바로 여분네입니다. 그래서 큰 결단과 함께 ‘돌아선 자’라는 이름으로 살게 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방인으로 살다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고 완전히 돌아와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굉장히 기뻐하십니다.

3. 거룩한 할머니들과 거룩한 이방인
마태복음 1장 족보에는 여자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 가운데 다말, 기생 라합, 그리고 룻이 있습니다. 족보에는 보통 여자 이름이 들어가지 않는데 왜 이 여인들이 들어갔을까요? 우리는 궁금해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금방 압니다. 이 여인들을 ‘거룩한 할머니들’이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게 부를까요? 모두 한때 이방인으로 살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을 만난 뒤 “이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시다” 하고 결단했습니다. 부모와 가족과 친구를 끊어 내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돌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스라엘 백성은 이 거룩한 할머니들을 존경합니다.
여분네와 갈렙도 마찬가지입니다. 완전히 이방 사회에 있었지만, 참 하나님을 발견한 뒤 과거를 끊어 내고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돌아왔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4. 평생 2인자로 남은 사람
이 사람이 연구 대상인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1인자가 되기를 원하지, 2인자로 남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갈렙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여호수아에게 충성한, 늘 2인자로 남아 있던 사람입니다.
여호수아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갈렙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하고, 여호수아에게 충성했습니다. 모두가 1인자로 만족하려 할 때, 이 사람은 2인자의 자리를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고 끝까지 그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깊이 연구해야 할 사람입니다.
| 구분 | 여호수아 | 갈렙 |
|---|---|---|
| 무대 |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리더십 | 그림자 속에서 묵묵히 헌신하는 팔로워십 |
| 자리 | 민족을 이끄는 책임 | 1인자의 자리를 탐내지 않는 자족 |
| 평가 | 세상이 기억하는 영웅 | 하나님이 기록하신 끝까지 충성된 영웅 |
5. 두려움을 모르는 무사의 정신
본문에 ‘아낙 사람’이 나옵니다. 아낙 자손은 특별한 족속입니다. 다윗이 싸웠던 골리앗도 이 아낙 자손의 계열로 봅니다. 키가 크고 장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정탐꾼들은 그들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갈렙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남들이 겁낼 때 그는 가슴을 폈습니다. 두려움을 모르는, 그야말로 대단한 무사의 정신을 가진 사람이 바로 갈렙입니다.

6. 85세의 건강한 자아관
갈렙은 건강한 자아관을 가졌습니다. “내 나이 85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지금도 강건하니 싸움에 나가고 들어오기에 힘이 그때나 지금이나 같으니” 하고 말합니다. “나를 보내 주십시오. 저 아낙 자손들, 내가 쫓아낼 수 있습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말 같지 않습니까? (웃음)
우리는 보통 70세에 은퇴합니다. 목사님들도 70세에 은퇴하면 마치 인생이 끝난 것처럼 여기는 모습을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모임에 잘 가지 않습니다. 모임에 가면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고 와야 하는데, 세상 다 산 사람처럼 뒷방 어른 노릇을 하니 도전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갈렙은 85세에도 “내가 전쟁에 나가 이길 수 있나이다” 하고 외쳤습니다. 결국 우리가 어떤 삶을 사느냐는 우리가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저는 20대의 저와 지금의 저 사이에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합니다. 20대에 가졌던 것들이 여전히 제 속에 살아 있습니다.

7. 평지가 아니라 산지 — 개척 정신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갈렙에게는 개척 정신이 있었습니다. 그는 “헤브론 산지를 내게 달라”고 했습니다. 평지를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험한 산지를 달라는 것입니다. 그 산지에 가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입니까? 개척하겠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에게는 철 병거가 있다” 하며 두려워했습니다. 단 지파는 쫓기고 또 쫓겨서 결국 북쪽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갈렙은 얼마나 다릅니까. 아낙 자손의 본거지, 가장 험준한 요새를 스스로 자원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자손 잘 먹고 잘 살자고 한 것이 아닙니다. 끝까지 국가와 사회와 교회를 위해 무언가를 한번 해 보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 결과 “헤브론이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는 기록이 남았습니다.
| 평지 (The Plains) | 헤브론 산지 (The Hebron Mountains) |
|---|---|
| 안락함, 이미 정복된 땅, 타협과 쉼 | 고난과 피흘림, 아낙 자손의 본거지, 가장 험준한 요새 |
| 다른 지파들이 요구한 권리 | 85세 노장이 스스로 자처한 사명 |

8. 맺는 말 — 내 인생의 명작
성경에 등장해 무언가를 이룬 사람은 뭔가 달라도 다릅니다. 거룩한 할머니들, 다말과 라합과 룻이 그렇습니다. 갈렙이 성경 속에서 ‘2인자’로 기록된 것도 뭔가 달라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는 85세에 “헤브론 산지를 내게 달라”고 외쳤습니다. 이 사람은 진짜 연구 대상입니다.
여러분, 우리 삶의 모델로 삼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딪혀도 부딪혀도 끝까지.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충성하기 위해서. 국가와 사회와 교회를 위해 무언가 한번 해 보리라는 마음으로.
저도 70을 넘기면서 갈렙을 마음속 깊이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아, 멋지다. 하나님, 나도 이런 삶을 살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인생이 이렇게 멋진 인생, 명작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하나님, 내 인생도 이처럼 멋진 명작이 되게 하옵소서.”
| 이 시대의 갈렙 — 세 가지 열쇠 | 의미 |
|---|---|
| 여분네의 결단 | 세상에서 돌아서는 용기 |
| 영원한 2인자 |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기는 충성 |
| 85세의 진격 | 나이와 한계를 부수는 개척 정신 |
나눔 질문
- 내 삶에서 ‘여분네처럼 돌아서야 할’ 옛 습관이나 세계관은 무엇입니까?
- 일터에서 나는 1인자의 자리를 원합니까, 2인자로 충성하는 기쁨을 압니까?
- 나를 ‘메뚜기’처럼 느끼게 만드는 오늘의 아낙 자손은 무엇입니까?
- 나이나 형편을 이유로 스스로 ‘뒷방’에 들어가 있지는 않습니까?
- 내가 하나님께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하고 구할 나의 헤브론은 어디입니까?